[바이시클 라이프 6월] 이탈리안 사이클링 프로젝트
▶ Intro
이번 달에도 이탈리안 사이클링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지난 한달간 많은 일이 있었다. 먼저 이탈리아 사이클 연맹(FCI)에 선수 등록을 했고, 그리포 바이크 동료들과 계속해서 훈련을 하고 있으며, 생애 첫 그란폰도(Granfondo)에 참가했고, 화물 트럭에 받혀 넘어지는 부상도 입었다. 그리고 89회 지로 디탈리아는 그 어느 해 보다도 흥미있게 진행 중이다.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 여인의 향기
알 파치노가 퇴역 장교 프랭크 슬레드 역으로 열연한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를 기억하는 독자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이제는 귀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음악에 맞추어 알 파치노와 가브리엘 앤워가 탱고를 추는 장면은 이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이다. 알 파치노가 시칠리아계 미국인이라서 그런지 그에게서는 다분히 이탈리아노(italiano, 이태리인)의 분위기가 풍긴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고, 즐기고, 찬미할 줄 아는 이탈리아인들의 민족적인 정서는 아름다운 여인을 감상하는데도 뒤질 수 없다.
그리포 바이크(Grifo Bike)의 멤버가 되어 일주일에 두세번씩 함께 훈련하고 있다. 멤버들의 나이들도 매우 다양한 편인데 20대 초반에서 6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자랑한다. 주중 훈련에는 보통 열명 내외가 참석하는데, 한번은 람베르토라는 60대 후반의 퇴역 장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라이딩을 하게 되었다. 산들 거리는 봄 바람을 가르며, 차르륵 차르륵 체인이 감기는 소리를 음악 삼아 달리는 멋진 라이딩이었다. 그날 마침 다니엘라라는 여성 멤버가 함께 라이딩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람베르토가 갑자기 이야기를 멈추며, 목소리를 낮추어 내게 “음... 프로푸모 델라 돈나(profumo della donna)”라고 속삭였다. ”음... 여인의 향기”정도로 해석이 가능하겠는데, 앞에서 라이딩하던 다니엘라에게서 멋진 혹은 달콤한(?) 여인의 향기가 난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아무 냄새도 맡지 못했는데... 그 향기를 느끼고 또 즐길 줄 아는 람베르토에게서 영화'여인의 향기'의 알 파치노를 보았다면 너무 심한 상상일까?
이것이 이탈리아인들의 일면이다. 끊임없이 떠들고, 웃고, 즐기줄 아는 그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그러나 사이클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는 참 진지하다. 그리포 바이크의 회장인 프란체스코는 내게 팀 져지를 건네주며 꼼꼼하게 다음에 있을 대회에 어떻게 임해야 할지 조언해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함께 라이딩하며 내 체력 수준과 라이딩 능력을 보고 평가한 뒤 좀 더 나은 단계의 사이클리스트가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사이클 경력 20-30년에 수 많은 그란폰도(Granfondo) 참가 경력을 가진 그들과 함께 달리며 많은 것을 배운다. 언덕에서의 체력 안배, 내리막에서의 최상의 라인, 그룹 라이딩 방법, 어디서 일어서고, 어디서 앉아야 하며, 어떻게 먹고 마셔야 하는지를 그저 함께 달리면서 가르쳐 준다. 나 같은 초보 사이클리스트에게는 과분한 복이 아닌가.
▶ 아빠가 페타키보다 훨씬 세다구!
이탈리아 최고의 자전거 축제, 지로 디탈리아(Giro d'Italia)가 시작되었다. 큰 아이 수빈이는 오후 내내 거실을 채우고 있는 지로 관련 방송으로 완전히 지로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말았다. 지로 주제가를 따라 부르고, 쉴새없이 페타키는 잘 하고 있느냐, 왜 화면에 안 보이느냐 등등 질문도 참 많다. 그러던 아이가 갑자기 시무룩해 졌다. 페타키의 부상 소식을 들은 것이다. 벨기에에서 벌어진 세번째 스테이지에서 페타키는 50 km를 남겨둔 지점에서, 그만 앞 선수와 충돌하며 무릎 부상을 입은 것이다. 50 km를 이를 악 물고 팀 동료들에 의해 보호 받으며 스테이지를 마친 페타키는 곧 이은 검사에서 무릎 골절로 인해 수술이 불가피하여, 지로를 포기하고 이탈리아로 돌아가야만 하게 되었다.
“아빠, 페타키 이제 안 나와?”
“응, 많이 다쳤어.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그치?”
“아빠처럼 다쳤구나.”
“그래... 아빠처럼. 그래도 아빠는 어디 부러지지는 않았잖아. 그치?”
“맞어. 그러니까 아빠가 페타키 보다 훨씬 센거네.”
“흐흐...”
맞다. 또 다시 부상을 입고 말았다.
맑고 화창한 봄날. 그리포 바이크와 함께 움브리아 북동쪽에 위치한 도시 움베르티데(Umbertide)를 향해 달렸다. 약 50 km의 기분 좋은 라이딩 후 힐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4.3 km의 등반 후 약 5 km에 이르는 멋진 다운 힐 구간이 이어지는 환상의 라이딩 코스. 그러나 잠시 후에 큰 사고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차량이 거의 없는 이 구간에는 약 2 km의 위험한 구간이 포함되어 있었다. 구비오(Gubbio)라는 도시에서 움베르티데로 이어지는 왕복 2차선 도로는 불행히도 많은 화물 트럭들이 분주하게 다니는 길이데, 우리가 정한 코스에 바로 이 복잡한 구간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고는 이 코스에 접어들어 불과 1 km 정도를 달렸을 때 벌어졌다. 우리 뒤 편에서 계속 경적을 울리며 신경질적으로 운전을 하던 대형 화물 트럭이 있었다. 우리는 대열을 한 줄로 유지하며, 추월할 수 있도록 라인을 분리해 주었다. 불행히도 나는 제일 후미에 위치해 앞 동료와 20 m 정도로 간격이 벌어지게 되었다. 트럭은 커브길에서 나를 추월해 들어오던 중 그만 차량 오른쪽 후미로 나를 밀어버린 것이다. 미리 감속을 하고 있었지만, 내리막 길이었기에 시속 30 km 이상으로 주행하던 나는 트럭에 받혀서 아스팔트에 곤두박질 쳐지고 말았다. 오른쪽 어깨, 팔꿈치, 양쪽 무릎이 아스팔트에 부딪히며 선혈이 낭자했다. 자전거는 저 멀리 팽개쳐지고 나는 아스팔트를 굴러 갓길로 내동댕이 쳐졌다. 트럭이 멈추고, 잠시 후 동료들이 달려왔다. 마침 자동차 운전자 중 의사가 있어 급히 달려와 내 상태를 확인하고 응급차를 불렀다. 다행히 골절은 없는 듯 싶다고 했다. 약 20분을 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응급차를 기다렸다.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처럼 떠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프란체스코에게 물어 보았다. 자전거는 어떠냐고. 프레임이 움푹 들어가고, 레버가 돌아가긴 했지만, 큰 이상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다행이다.
응급차가 도착했다. 목에 보호대를 하고, 산소 마스크를 쓴 채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치료를 받고 각종 검사를 했다.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었고, 걷는데도 지장이 없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온 시간이 밤 8시, 무려 7시간 만에 집에 돌아온 나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울고 있는 아내와 딸 아이를 보아야만 했다.
“괜찮아. 이제 나도 진짜 사이클리스트가 된 거라구.”
이런 소리를 위로라고 하는 나도 정말 단단히 미친 놈이다.
이렇게 나의 이탈리안 사이클 프로젝트는 온 몸을 던져 기록되고 있다.
▶ ”당신, 미쳤어!”(빠쪼-Pazzo)
팔꿈치의 실밥도 풀기 전에 나는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날씨가 너무 좋지 않은가!
'다쳤어도 어디 부러진 것은 아니니까, 테스트 라이딩을 해 보아야 한다'며 사고 당한 캐넌데일을 끌고 나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아내가 외친다. ”당신, 미쳤어!”이태리어로 이야기해서 좀 강도가 덜하게 들리긴 했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한다 싶기는 했다. 어쨌든 약 30 km의 테스트 라이딩을 해 본 결과, 좀 아프긴 했지만 라이딩을 못할 만큼은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올해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222개의 그란폰도 중 하나에 나는 이미 출사표를 던졌던 것이다. 데뷔전을 부상당한 몸으로 하게 되었으니, 뭐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훈련한다는 의미로 가볍게(!) 타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경기를 불과 보름 앞두고 당한 부상이었지만, 그리포 바이크의 프란체스코와 상의한 후 출전하기로 결정을 했다. 대신 내게 그레가리오(gregario.이태리어로 “도움 선수”라는 뜻으로, 팀 리더를 도와주고 앞서서 달리며 바람 막이를 해주기도 하고, 리더에게 물통이나 음식을 전달해 주기도 한다)를 붙여 주기로 했다.
”그래! 할 수 있다! 불과 97 km가 아닌가! 게다가 그레가리오도 있는데...”
▶ 나의 그란폰도(Granfondo) 데뷔전 - 성 프란체스코의 골짜기
드디어 출전 전야!
600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한다고 했다. 그 중 나는 유일한 한국 사람. 멋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만, 부상으로 오른 팔에 큰 힘을 줄 수가 없고, 무엇보다 훈련도 제대로 못했다. 목표는 소박하게! 97 km 완주다!
경기를 위해 병원에서 스포츠 경기 출전을 위한 건강 검진을 했다. 1년간 아마추어 경기에 참석할 수 있는 건강 증명서를 받고, 이탈리아 자전거 연맹에 가입하는 등의 절차도 모두 마쳤다. 이 절차가 없이는 어떤 경기에도 참석할 수가 없다. 자동으로 상해 보험에도 가입되게 되어, 경기 중 당하는 부상이나 손해가 모두 커버된다.
이번 경기는 움브리아 지역에서 펼쳐지는 경기 중 가장 규모가 큰 경기다. “성 프란체스코의 골짜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경기로, 아씨시의 성자 성 프란체스코가 거닐던 아씨시 근교와 뻬루쟈 일대를 무대로 펼쳐지는 그란폰도이다. 성 프란체스코는 13세기 아씨시를 중심으로 청빈 정신을 기본으로 수도원 운동을 시작한 가톨릭의 대표적 성인 중 한 명이다. 특히 움브리아 지역은 곳곳마다 성프란체스코의 영향을 볼 수 있다.
올해로 12회를 맞이하는 이 경기는 경기 코스를 통해 움브리아주의 빼어난 경관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참가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경기다. 지난 해에는 일본 여성 두 명이 참가했다고 했다. 호! 역시 일본 사람들은 없는 곳이 없다. 올해는 한국 대표로 내가 참석하게 되었으니, 꼭 선전해야겠다.
자전거를 정비하고, 체인에 기름을 치고, 볼트를 조이고, 경기 중 먹을 에너지바, 젤 등등을 챙겼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다리를 쉐이빙했다.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사이클리스트들이 다리 쉐이빙을 한다. 경기 전후의 마사지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외관상 털이 수북한 다리보다는 매끈한 다리가 아름답단다. 한국인 정서 상 다리 쉐이빙은 좀 꺼려졌지만, 면도를 하며 정신적 준비를 한다는 한 친구의 말을 따라, 나도 다리에 칼을 댔다. 시원하다. 다리가 바람을 가르는 느낌이 틀리다. 혹시 한국의 독자들 중에서도 다리 쉐이빙을 해 볼 용기가 있으신 분들은 꼭 한번 해 보시라고 권해보고 싶다. 정신적인 준비가 된단다! (참고로, 경기력 향상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내 첫 그레가리오의 이름은 세르죠(Sergio)다. 이태리 국영 방송인 라이(Rai)의 라디오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그는, 나와 같은 나이에 아직 미혼이다. 원래 이태리 사람들은 부모님의 집에서 독립하는 시기가 좀 늦는 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이태리인 친구 하나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미혼이고, 부모님 집에서 얹혀 살고 있다. 자기 말로는 다섯 번이나 집에서 독립해 나갔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부모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단다. 이태리 문화의 일면이다. 어쨌든 이 친구와 나는 출발선에 섰다. 앞에는 약 600여명의 참가자들이 있었고, 우리는 거의 끝 부분에 있었다. 경기는 시작되었고, 처음 30 km를 기분좋게 바람을 가르며 그룹들을 바꿔가며 앞으로 전진했다. 제일 앞에서 출발한 선두 그룹은 이미 시야에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뭐 어떠랴, 나는 완주가 목표 아닌가!
드디어 첫번째 힐이다. 3 km의 보통 수준의 경사도의 힐로, 큰 무리없이 다른 참가자들을 앞 서며 등반을 했다. 이어지는 기분좋은 다운 힐. 첫번째 언덕을 마치자, 전형적인 움브리아의 구릉 지형이 펼쳐진다. 평지에 이어지는 작은 언덕들, 다리 근육에 기분 좋은 긴장을 준다. 여기까지 최대 심박수의 80-85 퍼센트 선에서 달려왔다.
곧 두번째 언덕에 이르렀다. 경사도가 8 퍼센트 정도로 생각보다 가파랐다. 숨이 찼다. 심박계는 최대 심박수를 상회하고 있다. 이렇게 6 km를 힘겹게 오르고 나니 드디어 정상에 도달했다. 불행히도 정상을 1 km 정도 앞둔 지점에서 부터 양쪽 대퇴근(다리 앞면)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 임하는 경기에 경험 부족으로 생각보다 오버 페이스를 한 것 같았다. 안장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조금만 힘을 줘도 다시 쥐가 나는 악순환이었다. 내리막에서 다리를 풀어주고, 스포츠 드링크를 마시고, 영양 보충을 했다.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페이스를 많이 늦추어 뒤에서 따라오던 그룹과 함께 달리게 되었다. 그룹의 선두에 서자 다시 대퇴근(다리 앞면)의 쥐가 도졌다. 그룹 후미로 빠졌다. 다행히 휴식 지점을 만났다. 자전거에서 내려 다리를 풀어주고, 영양 보충을 다시 해 주었다. 잠시 쉰 후 출발하니, 많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조금만 다시 힘을 줘도 되돌아 오는 근육 경련으로 나머지 30 km 구간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내 그레가리오, 세르죠는 이 97 km 구간 내내 나의 곁에서 든든하게 나와 동행해 주었다. 앞에서 끌어주고, 바람을 막아주고, 페이스 조절을 도와주었다. 이 친구가 없었으면, 아마 완주가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드디어 결승점을 통과했다. 아쉬웠다. 쥐가 나지만 않았어도, 최소한 중간 그룹에는 속해서 들어올 수 있었는데, 후반부에 너무 고전을 했다. 그래도, 부상에도 불구하고 참가했던 첫 그란폰도가 아닌가. 다음 번에는 좀 더 잘 준비해서 좋은 성적을 내보기로 하자고 결심한다. 결국 사이클도 나 자신과의 싸움이 아닌가. 장시간을 라이딩하며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를 한다. 심박수를 확인하고, 힘을 안배하고, 근육들이 긴장하고 이완하는 것을 느낀다. 힐을 오르며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짜릿함도 느껴본다. 훈련을 하고, 경기에 출전하며, 자신의 능력이 조금씩 향상되는 것을 느낄 때 만나게되는 기쁨은 경험해 본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우리끼리의 비밀이 아닐까.
▶ 나가며
지로 디탈리아의 8번째 스테이지에서 리퀴가스 팀의 다닐로 디 루카는 좋지 않은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선두 그룹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라이 방송의 해설자는, “오늘 다닐로 디 루카는 다리가 아니라 정신으로 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아마추어지만, 프로와 같은 마음으로 훈련과 경기를 즐길 줄 아는 우리가 진정한 승리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 모든 아마추어 챔피언들을 위해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